머리말
수면의학에 입문하고 나서 환자를 진료하고, 학생과 전공의를 가르치고, 연구를 하면서 늘 아쉽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국내에 한글로 쓰인 수면의학 교과서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여러 학문영역에 걸쳐 수많은 장애가 있는 수면의학의 전부를 담는 교과서를 혼자 쓰기에는 너무 벅차서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수면의학 중에서도 관심 분야인 불면장애에 관한 교과서를 쓰기로 하였다. 혼자 교과서를 집필하기로 생각한 이유는, 각 장마다 저자들이 다른 교과서를 보면 외형적 틀은 일관성이 있지만, 내용이나 난이도는 편차가 꽤 있기 때문이다. 일단 교과서 초판을 내고 나면, 나중에 제자들이 최신 지견을 덧붙여 나름대로 일정한 유형의 새로운 판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요즈음은 국내 대학의 전자도서관이 워낙 잘되어 있어서 참고문헌을 찾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어지간한 참고문헌을 찾으려고 해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90년대 초에 코넬대학병원 수면-각성장애센터에 연수를 다녀온지라 굳이 외국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원장 보직을 마치고 안식년을 받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채플힐 대학병원 수면장애 센터에 방문교수로 간 것은 순전히 원하는 참고문헌을 쉽게 구하기 위해서였다. 1년간 체류하면서 노트북에 불면장애와 기타 수면의학에 관한 참고문헌을 원하는 만큼 담아서 귀국한 때가 2009년 가을이었고, 이후 틈틈이 여러 문헌을 검토하면서 주제별로 정리를 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2-3년 정도면 다 끝낼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의무부총장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 온 때가 2013년이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교과서 작업에 몰두하였으나 생각보다 내용이 방대하여 책이 나오기까지 만 6년이 걸렸다. 더욱이 불면장애의 정의와 분류 장을 먼저 집필하였는데 중간에 새로운 DSM-5 진단분류가 나와서 2개의 장을 다시 써야만 했다. 또 시간이 오래 흐르다 보니 과거에 수집한 참고문헌은 이미 최신지견이 아니었다. 그 사이 다행히도 고대의대 전자도서관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여, 국내에서도 원하는 참고문헌을 거의 다운받을 수 있어서 집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수면의학은 매우 젊은 학문이고 급속히 발전하는 영역이라 국어로 번역하면 생소한 용어가 많고, 또 오랜 시간에 걸쳐 집필을 하다 보니 수면의학 전문가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약어나 반복되는 전문용어 표기를 통일하는 일이 참 힘들었다. 특히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불면증 대신 진단기준을 충족시키면 불면장애로 칭하는데, 제목 이외에 본문이나 진단기준이 바뀌지 않은 분류에 대해서는 관습적으로 사용해 온 불면증으로 표기하였다. 질환별로 집필하는 교과서는 원인, 진단, 치료 등과 같이 일관성 있는 양식으로 작성하면 되지만 이 책은 불면장애의 원인, 진단, 치료가 각각의 장이다 보니 일정한 서식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표를 작성할 때 번역본보다 원본을 실으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은 부분은 영어로 작성하였다. 수면의 기본적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임상적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것이 수면의학이다. 그래서 수면생리와 수면장애를 이해하기 위한 수면의학의 기초를 총론으로 하여 가능하면 자세히 기술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수면의학의 역사가 짧아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특정 수면현상의 기전이 많아 결론을 선명하게 제시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은퇴를 고려하지 않고 교과서 집필을 시작하였는데 막상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나니 은퇴 시기가 코앞에 다가와서 불면장애 교과서 출간이 은퇴기념이 되었다. 30년 전 수면의학을 세부전공으로 정한 후 대학과 학회에서 게으름 피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여전히 남는 아쉬움을 불면장애 교과서 출간으로 다소의 위안을 삼게 되었다. 은퇴를 준비하면서 교과서 작업을 마무리 했던 지난 수개월은 그동안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해주신 주위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특히 수면의학을 공부하도록 이끌어 주신 스승 서광윤 명예교수님, 기도와 평안 속에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 아내 혜경, 그리고 언제나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준 성희, 태현, 서연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불면장애 교과서가 일선에서 환자 진료에 헌신하고 계신 임상의와 수면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공의들에게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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