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으로 이해하는 정신병리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의학과 수련 중에는 정신병리학과 관련된 별도의 과정이 없어서, 정신병리학은 어깨너머로 알음알음 배우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특히 젊은 정신과의사들에서, 정신병리학에 대한 개념과 철학이 확고하지 못한 경우가 간혹 눈에 띈다. 임상 정신의학이 표면적으로 관찰되는 행동과 그것을 교정하는 약물 간의 조견표처럼 되어 가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환자를 ‘매뉴얼에 정의된 행동양상 및 검사소견을 가지고 있는 대상’으로 보는 관점으로는 정신의학의 궁극적 목적인 인간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정신병리 각각에 대한 상세한 기술보다는, 몇 가지 주요 정신병리들을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한 개념을 전개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책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 책을 통해 환자들의 마음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해 볼 동기를 갖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책 속으로 정신질환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질병들로 분류하려는 체계적 분류학은 잘 정립되지 않은 상태며, 그 기초 작업이 되는 인간의 주관적 체험 및 행위에 대한 이해도 충분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신의학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기본적 이해의 부족이 정신의학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정신질환은 실재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7쪽)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정신의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공감이다. 나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나의 주관성에 대한 체험을 상대방에 연장하여 적용함으로써 그의 주관성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 과정은 추론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삼단논법과 같은 명시적 논리의 적용을 받는다기보다는 동작주의(enactivism)적인 다소 직관적 과정이다. 상대방의 주관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두 사람의 주관성 간에 공통점이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를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라 한다. 상호주관성을 통해 나 개인을 넘어선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현상학이다.(86쪽)
개별 환자의 주장이나 행위에서 정신병리의 형식을 추출해 내는 것은 임상 정신병리학의 일차적 작업이다. 경찰이 나를 잡으러 올 것이라는 내용의 생각은 형식적으로는 망상일 수도 있고 강박사고(obsessive thought)일 수도 있는데, 형식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경찰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내용의 공통점보다는, 표현되고 행동화되는 양상의 차이다. 형식주의 입장에서 볼 때, 정신병리의 내용은 겪었던 사건과 우연적으로 관계될 뿐이며, 질병과정을 반영하는 것은 정신병리의 형식 또는 유형이다.(111쪽)
환자의 고통이나 갈등은 어떤 형식의 정신병리를 갖는가보다는 거기 담긴 내용과 더 밀접한 관계를 갖기도 한다. 정신병리학 수련을 받지 않은 면담자도 상식을 동원해서 환자의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겠지만, 정신의학적 면담은 환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기보다는 면담을 평가하여 환자의 체험을 재구성하는 정교한 추론 작업이다. 정신의학자는 이런 이해를 통해 환자의 고통을 더 쉽게 공감하게 된다. 정신병리의 형식이 약물치료적 판단을 위해 중요하다면, 내용은 정신치료(psychotherapy)를 위해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형식은 의미(meaning)를 부여할 수 없지만 내용은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고, 정신치료는 의미를 다루기 때문이다.(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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